제가 어문회 42회 1급의 출제논란에 대한 글을 쓴 이후로 많은 분들이 반응해주셨습니다.
아직도 어문회의 출제에 문제가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시는데 제 의견을 좀 더 보충하겠습니다.
자꾸 쪽지를 보내시거나 비밀글로 남기지 말고 떳떳하다면 공개로 써주세요.


제 의견에 반대하시는 분들은 두 가지에서 공통적이십니다.

問1. 교재에 없는 걸 출제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나? (못 쓰는 건 응시자의 공부가 부족해서다.)
問2. 수능도 교과서 밖의 문제를 많이 출제한다. 



答1. 사자성어와 전의어는 그 특성상 완전히 암기를 하지 못하면 전혀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재에 없는 것을 출제하면 틀리라고 내는 문제입니다.
제가 문제를 내보겠습니다.

 
  01. 老( )( )樂      가난한 서민의 생활.
  02. ( )暗花( )      봄경치.
  03. ( )遠( )近      정당하지 못하게 힘에 의지함.
  04. ( )脚( )出      제 스스로를 자랑하고 높임.
  05. 覆( )不( )      막다른 처지에서 묘한 계책을 짜냄.
  06. 食( )( )煩      괴로운 일을 당할 때.
  07. ( )事畢( )      돌이킬 수 없음.
  08. 金( )玉( )      바쁘게 일함.
  09. 驥( )鹽( )      가망이 없음.
  10. 自誇( )( )      진실이 드러남.
                      해와 달.
                      늙은이와 젊은이가 함께 즐김.
                      유능한 인재가 하찮은 일을 함.
                      노력에 비해서 성과가 좋음.
                      (*순서대로가 아님)

어문회 기본서 1524개의 표제 사자성어 및 고사성어에 없는 것만 모았습니다.
정답으로 들어갈 글자들은 모두 1급 쓰기 배정한자 2005자 안에 포함되는 글자들입니다.

여러분은 몇 개나 쓸 수 있으십니까?

이렇게 출제하면 단순히 난이도가 높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응시자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통화한 어문회 직원과 일부의 다른 분께서는 상식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십니다.
저로서는 참 이해가 안 되는 상식입니다.
한자, 한문의 특성을 알고 그러시는 건지 의문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런 문제는 통째로 암기했을 경우에만 쓸 수 있는데 교재에 없으니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재에 없는 내용도 스스로 공부를 하라 이겁니까?
만약 그럴 경우 범위는 사막에서 바늘찾기가 됩니다.
그 이전의 어문회 1급이 이런 식으로 출제되었나요?

이런 출제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이 추세를 몰아서 출제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43회, 44회, 45회, 46회, 47회, 48회, 49회, 50회...
계속해서 이런 문제들이 다수 출제된다면 참 볼만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문회는 왠만하면 그렇게 안 할 것입니다.
응시자수의 지속적인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평이하게 출제해서 일정수준 합격률을 유지하다가 한 번씩 이렇게 출제해서 왕창 떨어뜨리고 또 응시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해야 응시자수가 꾸준히 유지되면서 재응시도 많이 시킬 수 있습니다.
어문회 1급의 그 동안의 추세를 보시면 알 텐데요.
36회, 37회가 막장행태였다가 이후로는 쉬웠고 예고없이 42회에 문제가 터졌습니다.


교재를 개편하거나 홈페이지에 추가로 내용을 더 올리고 거기서 출제하면 됩니다.
응시자의 손을 묶지말고 공평하게 기회를 주고 정당하게 출제해야 합니다.
이미 해결책은 제안되었습니다.

또 이 부분에 대해서 교재가 완벽하게 제공되는 시험이 어디 존재하느냐를 물으시는데요.
그럼 위에 제가 출제한 문제를 풀어보시던가요.
사자성어와 전의어만큼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 특성 때문입니다.

한 가지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교재를 충분히 익혔을 때 그 내용들을 활용해서 맞힐 수 있는 문제들이라면 교재 외에서 출제해도 됩니다.
그것은 교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자성어와 전의어 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험의 난이도 조절은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42회에서 새로운 객관식이 출제되었는데 난이도도 있으면서 신선했습니다.




여기서도 일부 단어는 전의어이면서 교재에 없기도 하지만 보기가 적절하게 주어졌기 때문에,
교재를 충분히 익힌 응시자는 답을 맞힐 수 있는 확률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로 써보라는 주관식이었다면 정답률이 0%에 가깝겠죠.
 
저런 출제유형은 좀 더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굳이 교재 바깥에서 출제하면서 정답률이 희박한 문제를 출제하지 말고 말입니다.
그런 출제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答2. 수능은 상대평가이고 자격증시험은 절대평가입니다.

물론 상대평가에서는 무조건 교재 밖에서 내야 되고, 절대평가는 무조건 교재 안에서 내야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수능에서도 교재 밖에서 너무 어렵게 출제되면 난리가 납니다.

그렇지만 수능에서는 어렵게 출제되어 평균이 높든 낮든 변별력만 갖춰지면 그리 문제될 것이 아닙니다.
(물론 평균이 지나치게 낮거나 높으면 변별력에 문제가 생기긴 하지만요.)
수능은 대체로 상위 1%에서 서울대 합격선이 정해진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재에 없는 것들이 많이 출제되어 평균이 낮다고 해도 어차피 자기 갈 길을 다 가게 됩니다.




수능의 경우 아까 말했던 1%선이 중요하므로 평균이 변하면 그 선이 따라서 변합니다.
이것이 상대평가입니다.
출제논란 때문에 서울대 갈 사람이 못 가게 되는 상황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물론 제 실력을 발휘했다는 가정 하에서.)




반면 자격증시험에서는 어렵게 출제되어 평균이 낮아지면 합격자수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자격증시험은 평균에 관계없이 합격선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어문회 1급 = 160점)

이런 상태에서 어문회 42회 1급은 출제가 저런 식으로 되었으니 하필 이런 때에 응시한 사람들은 억울하지 않을까요?
40회, 41회 정도로만 출제되었어도 합격했을 사람이 불합격합니다.
이것이 절대평가입니다.

수능과 대학입시처럼 합격선이 상위 몇% 이런식으로 가변적입니까?
어문회 1급 시험본 사람 중에 상위 10%에게 합격증을 준다고 하면,
어렵게 출제되어도 합격선이 150점, 쉽게 출제되었을 때는 170점 이상도 나올 수 있겠네요.
이런 식이라면 수능과 비교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저는 이런 큰 차이가 있다고 봤기 때문에 수능과 비교하기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격자의 숫자입니다.
그래프에서 빗금친 부분의 넓이를 적분하면 그것이 합격자의 숫자입니다.
위에서 보시듯이 상대평가에서는 그 부분이 일정한데 절대평가에서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보통 시험기관에서 통계를 공개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논란이 불거진만큼 그 숫자에 궁금증이 증폭됩니다.





이제 모든 관심은 어문회의 43회 1급의 출제로 모아집니다.

참 난감합니다.

만약 40회, 41회 수준으로 출제된다면 한편으로는 기쁘겠지만 "역시 불합격시키고 재응시시킬 의도였어"가 됩니다.
그리고 42회의 출제가 문제있다는 민원에 반응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다고 해도 44회, 45회를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어문회는 언제 어떻게 출제할지 알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43회 역시 이번 42회를 떠올리게 만드는 출제를 유지한다면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또다시 44회를 지켜봐야겠다는 말 밖에는.

결론은 42회 1급을 이렇게 출제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출제기준을 바꾸겠다면 이제부터라도 명확하게 공지를 하든지 해야합니다.
응시자들은 아무 정보도 없이 돈 들여서 응시하는데 계속 휘둘리는 것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Posted by firetakraw